[여행] 서울 조계사 살짝 둘러보기. 조계사의 역사. 일제시대 한국불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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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서울 조계사 살짝 둘러보기. 조계사의 역사. 일제시대 한국불교의 역사

푸른하늘은하수 2021. 9. 28.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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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서울 조계사 살짝 둘러보기. 조계사의 역사. 일제시대 한국불교의 역사



안녕하세요? 푸른하늘은하수입니다.

서울 시내를 두루 거닐다가,
어느덧 서울 조계사까지 당도를 했습니다.

3년 전 부처님오신날에
가족이 다 함께 이곳에 와 봤던
추억이 있어요.

그때 너무 사람이 많아서 밟힐뻔했어요.
진행하는 행사 몇 개 참석하고
자리를 떴지요.
부처님께 참배도 못했었죠.
줄이 워낙 길어서..


우리 가족은 종교가 없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사찰을 가고,
예수탄신일에는 교회를 가고,
부활절에는 성당을 가지요.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사원도 다녀왔었지요.
갈 때도 있고, 않갈 때도 있고요~~ ㅋ
그저 "순례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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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는 최초에는 조선초기인

1395년(태조 4년)
창건된 사찰이었다고 하는데요.

 

 

서울 조계사 


조선시대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한양 4대문안에는 사찰은 커녕
스님들이 천민 대접을 받는 시기였으니,
언감생심 사찰이 있었을 리가 만무했죠.

 

 

서울 조계사 

 

 

다만 조선 건국 초기에는 모든 세력을
규합해야 하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에
고려시대 번성했던 불교를 끌어안을 목적으로
4대 문 안에 이 사찰을 창건하기는
했었다고 합니다.

 

 

서울 조계사 

 

어쨌든 권력을 잡고,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던 조선은 유교를 신봉하는
선비의 나라를 세우기로 하고,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며,
불교를 억압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서울 조계사 극락전

 

불교는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게 됩니다.


현재 유구한 역사를 지닌 사찰들이
모두 산속에 있게 된 배경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종교는 탄압하고 억제한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지요.

사람의 믿음이라는 것이
어디 정책적으로 쉽게 없어지겠어요?

 

 

 

서울 조계사 극락전

 

조선의 운명은 조선말기 풍전등화와 같은
불꽃처럼 사그라들고 있었죠.

그런 시기, 구심점이 없었던 조선불교는
일본 불교 세력에 계속 밀리기만 했다고 합니다.

 

 

서울 조계사 법종루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불교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한용운 등 민족적 불교인사들이
들고 일어났다고 합니다.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

 

1902년 흥인지문 밖인 지금의 창신동에
원흥사를 창건하고,

1908년 각 도의 대표를 모아
원종 종무원을 열었다고 합니다.

 

 

서울 조계사 8각10층 진신사리탑

 

전국에서 기금을 조성한 이들은
1910년 현 조계사 옆에 각황사를 세웁니다.
이 각황사가 조계사의 전신이 됩니다.
각황사를 통해 조선 불교를 중흥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조계사의 창건일은 1910년입니다.

하지만, 설립인가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라가 망합니다.

 

 

서울 조계사 대웅전 편각

 

일제식민시대가 되면서 일제와의 타협이냐,
우리 민족만의 종교로 거듭나느냐...의 기로에서
다양한 고민과 잘못된 행적들이 나타납니다.

나라가 망하였던 시절,
갈팡질팡 했던 역사적 사건들은
정말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서울 조계사 법종루


이러한 상황속에서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모든 종교를

직접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종교단체를
강제 해산시키기에 이릅니다.

 

 

서울 조계사 8각10층 진신사리탑

 

한용운 등 민족승려들은
한국불교의 새로운 대표기관을
세우고자 노력했으나,
조선총독부가 방해, 회유해서
무산됩니다.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는
많은 불교인들을 교묘하게 회유하고
친일을 하면 불교를 중흥해 주겠다고 꼬셔서
다수의 인사가 친일로 전환되기도 합니다.

남은 사람들은 민족적인 사상을
가다듬으면서
3.1 운동, 만당 등으로 맞서
일제에 계속 저항하기도 합니다.

 

 

서울 조계사 대웅전

 

1930년경 일제는 야욕을 드러내는데요.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절인 박문사
건립하고 모든 불교의 총본산으로
삼으려고 하는 시도를 합니다.

 

 

서울 조계사 회화나무

 

이에 한용운과 회광, 만공 등의
민족불교 인사들은 크게 반발하며,
민족종교를 부흥시키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기로 합니다.



서울 조계사 꽃 공양

 

그리고 1937년 보천교 십일전이라는
건물을 매입하여 각황사 옆에 태고사를
이어받는 조계종의 본사를 창건하려고 합니다.

 

 

서울 조계사 꽃공양

 

각황사는 1938년 현재 조계사가 완공된 후
소유권이 다른 이에게 이전되었던
일본식 본당이 철거되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하네요.

 

 

서울 조계사 대웅전 모습

 

각고의 노력끝에

1941년 조선의 사찰 및 승려를
통합하는 의미에서
'조선불교 조계종 총본사 태고사법'이 인가를
얻어 조선불교 조계종으로
발족을 하였다고 합니다.

 

 

서울 조계사 분향

 

참으로 어려웠던 불교계의 시련이었던 듯합니다.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져 오던
불교에 대한 억압과 탄압이
조선말기에서 일제시대로 넘어가면서도
지속적으로 자행되었으니 말입니다.

 

 

서울 조계사 분향

 

이렇게 조계종으로서의 총본산을
마련한 한국불교는 일제시대의
탄압에도 견디며 조금씩
성장을 했다고 하죠.

 

 

서울 조계사 분향

 

해방 이후에는 일본 일색이던 불교의
정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비구승들이 태고사로 들어오게 됩니다.

 

 

서울 조계사 분향

 

이후 종교와 정치가 합작하여
누가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이어받을지에
대한 분쟁과 분규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울 조계사 이정표

 

일제시대에 일본 불교와 타협했던
대처승들이 많았고,
우리나라 전통적인 비구승들도
일부는 일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겠죠..

 

 

서울 조계사 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계가
전통적인 불교의 모습으로 대부분 회귀에
성공했다고 하는데요.


사람이 하는 일들은 실수와
문제가 지속 발생하게 되죠.

 

 

서울 조계사 안심당

 

우리나라 불교는 조선시대에
명맥이 많이 끊겼기 때문에
불교의 역사는 조선시대에는
나타나는 게 별로 없습니다.

 

 

서울 조계사 포교당


그래서 고려시대의 불교역사와
일제시대로부터의 역사가 있습니다.

일제시대에서의 아픈 역사는
불교계에도 뼈아픈 역사로 남습니다.

 

서울 조계사 템플스테이

 

친일 행적과 민족적 행적이 뒤섞여서
과연 불교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위태위태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지요.

 

 

서울 조계사 교육문화센터


지금에서야 친일을 많이 한 사람들이
한국 불교계에 많다고 손가락질하겠지만,

당시에는 살아남아서라도
불교를 지키겠다는 타협이었을 겁니다.

누가 누구를 비난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죠

 

서울 조계사

 

그럼에도 우리는 늘상
정통성과 진짜 모습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면서

과거의 잘잘못을 들춰내며
혹평하고 비난하는 것을 그치지
않습니다.

 

 

서울 조계사 승소

 

그리고 최근까지도 불교계의 일부
잘못된 분들의 불편한 내용이 언론을 타고
보도가 되면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장면들이 있었죠.

 



서울 조계사 승소

 

스스로 정화를 하여 본래 모습으로
회복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죠.

하지만 지속하는 노력은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불교계가 진정한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원합니다.

 

 

 

서울 조계사 불교대학

 

조계사라는 이름의 '조계'의 조계산은

중국 선불교의 육대 조사인 혜능대사(638-713)가
주석하셨던 산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코끼리 부처님상

 

육조 혜능대사는 여러 선사 가운데서도
가장 존경받는 분으로
그분의 일생과 가르침에 대해서는
지속해서 연구되고
수행의 지표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코끼리 부처님상


그런 훌륭한 분의 이름을 이어받은
조계사는 한국불교의 주요사원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오는 길 길가에,
꽈리가 피어있는데요,
이놈은 풍선초입니다.

 

풍선초

 

우리가 이렇게 화창하게 좋은 날
우리 민족의 언어로,
민족의 땅을 거닐면서,
조상님들의 피가 흐르는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풍선초

 

이 풍선초처럼,
하트 모양의 봉오리처럼...

모두들 둥글게
사랑하며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서울 조계사를 지나면서
생각이 나고,
또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제 스스로 짚어 보았는데요.

언제라도 역사는 반복되고,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합니다.

 


멋진 하늘을 배경으로
멋진 조계사를 보아서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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